한국 모더니즘 회화 ‘되기’를 말하다

뉴스프리존, 편완식 기자
21일~8월1일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한국현대회화 하이라이트: 모더니즘과 도전’전
권옥연, 김종학, 김창열, 김환기, 박서보, 등 14명 참여
 

 

서구 모더니즘이 ‘보는 법’을 바꿨다면, 한국 모더니즘은 ‘존재가 흘러가는 방식’ 자체를 회화로 만들었다. 서구 모더니즘은 현실을 얼마나 똑같이 그리는가에서 벗어나,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흔들며 ‘보는 규칙’을 새롭게 만든 흐름이다. 원근법과 형태, 색채 같은 기존의 기준을 해체하고, 대상을 다르게 보이게 함으로써 시각의 질서를 다시 구성했다. 반면 한국 모더니즘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반복되는 행위와 물질의 축적, 여백과 시간의 흐름을 통해 그림을 ‘보는 대상’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는 과정’으로 확장시켰다. 즉 서구가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면, 한국은 존재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회화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가 21일부터 8월 1일까지 선보이는 ‘한국현대회화 하이라이트: 모더니즘과 도전’은 바로 이 차이를 출발점으로, 한국 현대회화를 하나의 독자적 사유 체계로 재구성한다.

 
이우환, 바람으로부터, 1986, 캔버스에 유채, 광물 안료, 181.8 x 227.3cm ⓒLee Ufan ADAGP, Paris – SACK, Seoul, 2026, 이미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이우환, 바람으로부터, 1986, 캔버스에 유채, 광물 안료, 181.8 x 227.3cm ⓒLee Ufan ADAGP, Paris – SACK, Seoul, 2026, 이미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이번 전시는 195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주요 회화 25점을 통해 한국 모더니즘의 형성과 전개를 조망한다. 그러나 이 전시는 단순한 미술사적 정리에 머물지 않는다. 광복과 전쟁, 산업화라는 급격한 역사적 전환 속에서 회화가 어떻게 재현의 틀을 벗어나, 시간과 물질, 신체의 감각을 담아내는 매체로 변화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회화는 더 이상 세계를 ‘보여주는’ 장이 아니라, 존재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장으로 전환된다.

 

특히 전시는 서구 모더니즘과 한국적 모더니즘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서구 모더니즘이 재현을 해체하고 형식의 자율성을 확립하며 시각의 질서를 재편했다면, 한국 모더니즘은 반복과 수행, 물질의 축적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감각을 화면 위에 새긴다. 다시 말해, 서구가 이미지를 혁신했다면, 한국은 존재의 흐름—곧 ‘되기’를 회화로 드러냈다.

 

전시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1950~60년대에는 작가들이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시기의 추상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전후 현실의 균열과 불안을 견디기 위한 조형적 대응이었다. 이어 1970년대에 이르면 회화는 이미지 생산을 넘어, 반복적 행위와 물질적 축적을 통해 하나의 수행적 장으로 확장된다. 단색화는 이 흐름의 정점에서, 화면을 ‘그림’이 아닌 ‘시간이 쌓이는 장소’로 전환시킨다.

 

박서보, 묘법 No.910614, 1991, 캔버스에 종이, 혼합재료, 130 x 162cm ⓒPARKSEOBO FOUNDATION, 이미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박서보, 묘법 No.910614, 1991, 캔버스에 종이, 혼합재료, 130 x 162cm ⓒPARKSEOBO FOUNDATION, 이미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전시에는 한국 현대회화를 대표하는 권옥연, 김기창, 김종학, 김창열, 김환기, 류경채, 박고석, 박래현, 박서보, 윤중식, 이성자,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등 14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작업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공통적으로 회화의 본질을 끊임없이 갱신해 왔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읽힌다.

 

전시의 중심에는 김환기와 이우환이 있다. 김환기의 점화 ‘우주 05-IV-71 #200’는 점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 화면을 하나의 리듬이자 우주적 장으로 확장시킨다. 수많은 점들은 더 이상 개별적 요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이어지는 존재의 흐름으로 작동한다. 이 작품은 특히 오랜 소장자의 방식 그대로 ‘가로 설치’되어 공개된다. 회화를 바라보는 물리적 경험 자체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김창열, 물방울 No.2M, 1978, 캔버스에 유채, 152 x 191cm ⓒ이미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김창열, 물방울 No.2M, 1978, 캔버스에 유채, 152 x 191cm ⓒ이미지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 제공

이우환의 ‘바람으로부터(From Winds)’(1986)는 단일한 행위의 흔적과 광활한 여백의 긴장을 통해,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관계를 극도로 예민하게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회화는 형상을 구축하기보다, 존재가 스쳐 지나간 흔적을 남기는 장이 된다.

 

두 작가는 축적과 절제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국적 추상의 깊이를 형성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회화는 모더니즘을 ‘수용’한 것인가, 아니면 ‘다르게 생성’한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회화는 완성된 형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는 ‘되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공간의 전환과도 맞물린다. S2A는 ‘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로의 명칭 변경을 통해 기업 컬렉션의 전시 기능을 넘어, 동시대 미술 담론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선언했다.  이는 미술을 소비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장으로 전환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April 17,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