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필로 감각의 심연으로 우리를 이끄는 김홍주 작가

뉴스프리존, 편완식 기자

27일~3월14일 S2A ‘표면에 남다’ 초대전
1970년대 오브제부터 세필화까지 선보여

김홍주의 회화는 오랫동안 ‘그리는 행위 자체로 귀결되는 회화’라는 말로 설명되어 왔다. 형상이나 서사, 메시지의 부재를 강조하는 방식이었지만, 컨템포러리 아트 맥락에서 이 정의는 오히려 갱신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김홍주의 작업은 단순히 의미를 거부하는 회화가 아니라, 의미가 작동하는 조건 자체를 재설정하는 회화이기 때문이다.

S2A는 새해를 여는 첫 전시로, 27일부터 3월 14일까지 김홍주의 개인전 ‘김홍주: 표면에 남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며 독보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온 원로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되짚어보기 위한 자리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오브제부터 세필화로 이어지는 김홍주의 대표작 17점을 선보인다.

동시대 미술은 더 이상 이미지가 무엇을 재현하는가보다는, 이미지가 어떻게 존재하고, 어떤 방식으로 경험되는가에 주목한다. 이러한 전환의 지점에서 김홍주의 작업은 놀라울 만큼 현재적이다. 그는 회화를 가상의 창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관습(완결된 프레임, 평활한 지지체, 환영적 공간)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바탕 처리되지 않은 생천, 부분적인 젯소, 스트레처를 거부한 느슨한 가장자리는 회화를 더 이상 ‘보는 대상’이 아니라, 물질과 시간, 행위가 응축된 사건의 표면으로 만든다.


수만 번 반복되는 세필의 행위는 미니멀리즘의 반복이나 개념미술의 절차성과 닮아 보이지만, 그 목적지는 다르다. 김홍주의 반복은 시스템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의 통제력이 무너지는 지점을 향한다. 처음에는 계산된 노동처럼 보이는 선들은 점차 리듬과 감각의 흐름으로 이행하며, 작가 자신조차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상태를 생성한다. 이때 화면에 남는 것은 형상이 아니라, 집중과 이탈, 통제와 붕괴가 교차한 시간의 밀도다. 이러한 태도는 동시대 미술에서 논의되는 수행성(performativity)과도 깊이 연결된다.

김홍주의 회화는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암시한다. 그러나 퍼포먼스가 기록이나 서사를 통해 확장되는 것과 달리, 그의 작업은 끝내 화면 안에 머문다. 회화는 여기서 매체적 한계를 드러내는 대신, 수행이 응축된 물질적 잔여물로 기능한다.

 


1970년대 오브제 작업에서 이미지는 거울, 창문, 문틀과 결합하며 실제 공간 속 사물로 존재했다. 이는 ‘무엇을 볼 것인가’보다 ‘어떻게 보게 되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후의 회화는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은 채, 방향을 바꾼다. 공간 속 사물 대신, 표면 자체가 시선을 붙잡는 장이 된다. 다시 말해 김홍주의 작업은 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화면은 의식과 통제되지 않는 무의식이 맞닿는 경계, 그 중간 세계의 어느 지점을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다. 수만 번 반복되는 세필의 행위는 처음에는 의식적인 통제처럼 보이지만, 그 층위가 쌓일수록 논리를 벗어나 감정과 감각의 심연으로 우리를 이끄는데, 그곳에서 회화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으로 도달하는 상태가 된다.”(S2A 디렉터 강희경)

 


오늘날 이미지가 과잉 생산되고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환경에서, 김홍주의 회화는 속도와 해석을 유보한다. 그의 화면은 빠른 독해를 허용하지 않으며, 의미를 요구하는 관람 태도 자체를 무력화한다. 이는 회화의 무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을 재조율하는 저항의 방식이다.


관람자는 무엇을 이해하기보다, 화면 앞에서 머무르고 감각을 조정하는 시간을 요청받는다. 결국 김홍주의 회화가 동시대적으로 유효한 지점은, 회화의 본질을 복원하려는 태도에 있지 않다. 그것은 회화를 하나의 장르로 고정하지 않고, 시간·신체·물질이 교차하는 상태로 열어두는 선택에 있다. 그의 작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회화'가 아니라, 말 이전의 감각과 상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회화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의 동시대 미술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접속한다.

출처 : 뉴스프리존(https://www.news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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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7, 2026